/화기애애 불구 입장 차이는 첨예
“오전 7시 전에 출하작업을 개시하므로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새벽 출근은 물론 야간 대기시간에 대한 보상도 없다. 이런저런 장비 관리비 등을 빼고 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이 채 안된다. 이런 처지이니, 레미콘믹서트럭 사고도 좀처럼 끊이지 않는 것 아니냐.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레미콘믹서트럭 운전자
“기본적으로 차량을 소유한 개인사업자다. 사업자 간 관계인데, 갑자기 오후 5시에 퇴근하겠다고 나서면 매년 올려준 운송비를 추가로 더 인상해 달라는 욕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계약 관계로 정리할 문제다. 특히 8ㆍ5제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에 대한 작업방해 사례가 발생한다면 우리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레미콘 제조사
“레미콘업체와 운송사업자가 협의할 문제다. 우리가 왜 이런 갈등에 휘말려야 하나. 만약 운송비가 인상되면 그 부담도 레미콘사들이 져야 할 몫이지, 레미콘을 구매하는 건설사의 책임이 아니다. 이를 빌미로 한 레미콘가격 인상 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 현장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계약상 책임을 물어 해결해야 한다.”-건설사
지난 1월 시작됐지만 추운 날씨 속에 평가절하됐던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자들의 8ㆍ5제 근무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3월 성수기가 임박한 가운데 8ㆍ5제가 계속 이어지면 새벽ㆍ야간작업이 불가능했던 동절기와 달리 공기지연에 따른 손실이 현실화될 가능성 탓이다.
반면 이와 관련한 당사자들의 의견은 이같이 맞섰다. 국토교통부가 이를 중재하기 위해 첫 회의를 가졌지만 입장 차가 컸고 해법 찾기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서울 한강홍수통제소에서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설기계협회,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회 담당자들이 모인 가운데 8ㆍ5제와 관련한 첫 회의를 갖고 해법을 논의했다.
첫 만남 특성상 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입장 차이는 그대로였다. 8ㆍ5제 근무를 강행한 레미콘운송총연합회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8ㆍ5제의 불가피성을 항변했다. 이를 통해 과로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잇따랐던 믹서트럭 관련 사고를 저감하고 선진형 근무문화를 정착해 건설현장 사고를 예방함으로써 고품질의 시설ㆍ건축물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 건설업계는 기본적으로 계약관계에 있는 레미콘 제조사들과 운송사업자 간에 원만히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중간 입장인 대한건설기계협회는 8ㆍ5제의 신축적 운용을 통해 건설현장 차질을 최소화하고 윈윈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참석자는 “국토부가 레미콘운송총연합회의 요구를 수용해 성수기에 들어가기 전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주선한 첫 만남이었지만 기존의 입장 차, 시각 차는 좁히지 못했다. 앞으로 계속 협의해 나가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쉽게 접점을 찾긴 힘들 것으로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중요한 당사자인 레미콘 관련 협회나 조합이 빠진 점도 아쉽다는 반응이다. 국토부가 산하 단체들에 한해 회의참석을 요청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소속된 레미콘 관련 협회와 조합을 불가피하게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반쪽짜리 회의’란 비판을 면하긴 힘들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 레미콘을 구매하는 건설업체들의 담당자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가 참석하지 못한 점도 한계란 지적이 상당했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되풀이된 문제인 만큼, 서로 얼굴을 맞대도 뾰족한 해법이 없겠지만 어쨌든 직접적 당사자들을 모두 모아서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며 “사실 8ㆍ5제 시행에 따른 추가 비용부담을 건설ㆍ레미콘ㆍ운송사업자 중 누가 지느냐를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이므로 중재는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작업시간을 벗어난 근무에 대해서는 할증비용을 얹어 지급해야 하는 상황. 건설업계는 레미콘업계에 부담을 돌리고 레미콘가격에 반영하기 힘든 레미콘사들도 수용하기 힘든 처지란 설명이다. 정부가 건설공사 예산에 추가비용을 반영하면 쉽게 타결될 수 있지만 재정 부족에 허덕이는 정부, 지자체, 발주기관이 선뜻 지불하려 할지 의문이다.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냉철히 보면 국민 세금으로 개인사업자인 믹서트럭 운전자들을 보상하는 문제다. 정부도 부담스럽고 건설사나 레미콘사들도 부담을 짊어질 형편이 아니다. 성수기에 접어들어 공사 차질이 발생한다면 기업별 소송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더해 레미콘 믹서트럭을 수급조절 대상으로 묶어 믹서트럭이 늘어날 여지는 틀어막아 놓은 채, 한정된 운전자들에 대한 운반비만 인상하려는 정부의 건설기계 정책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출처-건설경제 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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